이수경: Vibration of silence
DB Type
Description
2023.06.16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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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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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30 Bleupâle 2023, Acrylic on canvas, 92x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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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30 Rose 2023, Acrylic on canvas, 92x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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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40 Bleucyan 2023, Acrylic on canvas, 100x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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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50 Bleu 2023, Acrylic on canvas, 91x11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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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50 Mauve 2023, Acrylic on canvas, 91x11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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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80 Bleu 2023, Acrylic on canvas, 146x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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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80 Rose 2023, Acrylic on canvas, 146x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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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80 Vert 2023, Acrylic on canvas, 146x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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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2135 Rose 2022, Acrylic on canvas, 200x1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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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S23100 Olive 2023, Acrylic on canvas, 162x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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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유기체로 증식하는 선과 색채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이수경의 회화는 선명하고 쾌적한 색채들이 평면적으로 단호하게 마감되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반듯하고 유기적인 선들이 깔끔하게 이어지면서 모종의 윤곽을 형성하며 부유한다. 그 형태는 식물이나 자연의 어느 생명체를 부단히 암시하는 도상들이자 순수하게 색채와 선을 머금고 그것으로 자족하는 유기체처럼 자리한다. 색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회화적 존재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무수한 변이를 발생시키며 번식한다. 어떠한 외부적 조건이나 특정 문맥에 견인되지 않고, 어떠한 것도 참조하지 않으면서 그 스스로 충만한 삶을 이어가는 이 흔적은 세포나 원자처럼 혹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속성과 원리를 분유하며 이동한다. 마치 픽셀이미지나 디지털 방식의 운용체계를 연상시키듯 회화의 최소단위들이 연쇄적으로 분열하고 집합하기를 거듭하는 형국의 풍경이기도 하다.
납작한 표면에 물감/색채와 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그림은 전형적인 추상회화다. 화면의 평면성을 인지시키는 단단하게 밀착되어 칠해진 단색의 배경은 색 차제로 모든 것을 포용하듯 도포되어 있다. 이 모노크롬한 회화는 색채만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빛을 발한다. 색채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매끈하게 물질화하고 충분히 시각적이고 장식적인 어느 상태를 깨물고 있다. 그렇게 매혹적인 단색의 피부 위로 또 다른 색채들이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그것들을 꾸미는, 일정한 굵기를 반듯하게 거느린 선들이 여러 율동, 궤적을 만들면서 춤을 춘다. 선들은 순수한 조형의 기본 여러 단위로 기능하면서도 그 무엇인가가 되고자 욕망하는 기운으로 꿈틀대는 것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지 못한 것들이지만 율동과 흐름을 거느린 선과 색면 덩어리들은 광활한 색채의 대지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피어나거나 돌처럼 박혀있다. 단색의 색채가 물든 화면에 일정한 면적을 지닌 형상들이 출현하고 그 덩어리의 외부와 내부는 선들에 의해 윤곽 지어져 있거나 촘촘히 내부가 채워져 있는데 어느 것들은 여러 선들이 교차하면서 미묘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색채와 색채간의 길항이 또한 화면을 부단한 흐름으로, 또 다른 형국으로 몰고 간다.
화면 안에 자리한 일정한 굵기를 지닌 선은 붓질의 궤적을 품고 있으면서 방향성을 지시하는 동시에 윤곽과 내부가 균질하게 도포되어 있어 선이자 색면의 역할을 한다. 붓질 스스로가 선과 면, 형태와 내부를 동시에 아우르면서 지나간다. 또한 바탕 면과 그 위에 올려진 선/그려진 부분은 내·외부의 구분이 없이 혼재되어 상호 겹쳐지고 얽혀있다. 따라서 전경과 후경, 그려진 부분과 배경의 차이와 위계는 무너진다. 색채로 물든 배경 위로 유영하는 선, 그물망, 네트 같기도 한 것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그리기, 선 긋기, 칠하기의 욕망을 막막하게 펼쳐 보인다. 특정 형태를 지니지 못하고 다만 선으로만 자족하고 색채로만 빛을 내는 형국을 연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수경의 이 그림은 거의 생득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목을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라고 기명했었다. 이 제목은 현재까지도 유효해보인다, 테라 인코그니타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땅,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의 그림 그리기, 그러니까 백지상태의 캔버스 위에 붓질의 흔적을 남기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회화적 행위를 다름아니라 자신만의 테라 인코그니타를 찾아간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그림은 그것이 구상이듯 추상이든 무의 공간에서 다소 막막하게 출발한다. 작가들은 저마다 자기 앞에 자리한 그 공포 같은 화면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그 공간을 힘겹게 채워나가면서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삶과도 같다. 내 앞에 펼쳐진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을 순간순간 겪어나가면서 이를 다만 필연적으로 끌어안고 살아나가는 것이 삶이듯이 그림 역시 매 순간, 순간 우연에 기대어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색을 칠하고 덩어리를 만들고 선을 그어가면서 자신의 회화를 조성한다. 경작해간다.
추상회화란 주어진 화면에서 외부 세계를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사상된 것을 말한다. 아울러 그것은 주어진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만을 탐구하기도 한다. 이른바 모더니즘 회화가 그것일 것이다. 현대회화는 캔버스와 그것이 묘사하는 저 바깥 세계와의 대응으로부터 캔버스와 그것을 보는 관람자 사이의 대응으로 이동했다. 그에 따라 오직 색채, 붓질, 선의 결합만으로 미술작품의 정서적 내용, 즉 미적 감동을 확립하고 전달하고자 했다.
이수경의 작품 역시 회화의 물질적 요소들을 자율적으로 구사하여,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순수한 미적 구성으로 회화를 만들어내는 모더니즘의 이상을 연상시키는 편이다. 상당히 깔끔하고 명징하게 칠해진 원색의 색채들로 마감된 표면은 그것 자체로 강한 장식성을 내뿜으며 도포되어 있다. 매끈하고 밝고 깨끗한 색채의 밀도와 강도가 상당히 감각적인 피부를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이 모종의 화면을 펼쳐 보인다. 물론 이 표면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몇 개의 색층이 겹쳐있고 일정한 두께를 지닌 색면, 선의 결이 공간감을 자아내는 편이며 미묘한 촉각성도 밀어 올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수경은 캔버스의 표면이 지닌 평면성을 강하게 인식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이 안에 다층적인 공간감을 밀어 넣기도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모노크롬한 화면은 색다른 지경으로 이동한다. 표면에 그려진 색/선과 배경의 색채들이 뒤섞여 혼재하면서 이루어지는 몇 겹의 공간감이 그렇고 색띠, 색선이 지닌 저부조의 요철효과가 자연스레 만들어내는 촉각성이 두드러지는 화면은 모더니즘 회화가 보여주는 평면성 논리의 틀 안에서 이를 교묘히 흔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회화의 평면성에는 두 차원이 있다. 화면의 평면성과 표면의 평면성이 그것이다. 표면은 주어지는 재료의 물리적인 면을 말하며 화면은 화가가 그런 표면 위에 그려서 구성한 면을 지칭한다. 그리고 회화의 평면성은 화면의 구성적 평면성과 표면의 물리적 평면성, 두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개의 평면이 화가가 다루는 평면이다.이수경은 화면 전체에 분포된 균질한 색채, 평면성을 강조하며 칠해진 색면과 그 위로 일정한 굵기를 지닌 유기적인 선의 단호하고 규칙적인 배열을 만들어 보인다. 회화와 자동 결부되던 지시 대상과의 유사성을 파괴하고 회화의 순수한 요소(색채와 선)를 부각 시켜, 지시 대상 없이 조형 요소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바탕으로 의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열어 나가고자 했던 추상회화의 전형성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추상의 논리를 방증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나로서는 이수경의 그림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바로 선이다. 통상 선은 드로잉의 제1요소로서, 대상의 윤곽선을 묘사하며 대상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선의 전통적인 기능이었다. 그러나 이수경의 선은 특정 형상을 그려내는 드로잉의 목표를 좌절시키며 추상에 이바지한다. 그리고 이 선은 일종의 빛으로 약동하는 시각적 환경 또한 창출하는데, 이는 예전에는 색이 맡았던 역할이다. 그 선은 순수하게 추상적인 선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신체와 감정의 지표적 기능을 한다. 몸의 활력이 감지되는, 진동성이 느껴지는 선이다. 맑고 순수한 색채의 바다 위에 단호한 선들이 함축적인 표정을 짓고 응고되어 있다. 그 선은 작가의 신체가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힘에 의해 밀고 나간 여정이자 모든 감각과 사연을 오로지 선 자체로만 제한시켜 모종의 덩어리로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활달하고 감각적이며 미끌거리듯 유연하게 지나가는 선은 상당히 ‘그래픽’하면서도 격렬한 감정과 상념을 동반하며 도저히 재현될 수 없고 특정한 형상을 지닐 수 없는 것에 몸을 만들어 주면서 막막한 공간에 부양되어 있다. 실타래 같고 촘촘한 네트 같은 이 선은 마음과 정신의 어떤 상황, 사태를 절박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기술하고 있는 상징적 언어로서 다가온다. 주어진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색채덩어리와 그 안과 바깥을 교란하고 겹쳐지는 예민한 선들의 구성을 이루어진 이수경의 그림은 평면 회화가 껴안고 있는 요소들을 동원해 만들어낼 수 있는 추상의 여러 표정, 상황을 생성적으로 다채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작가노트
그림을 시작한 후부터 항시 늘 똑같은 의문과 고민을 한다. 나의 경험과 훈련이 오늘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비어있는 화폭을 보면 늘 긴장되며 또한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있다.
인간의 생각과 특히 미지의 세계를 기입 또한 기원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행위를 볼 수 있는 라스코의 동굴화부터 현대화까지 꾸준히 진행되온 평면 작품들 중에서 내가 추상을 선택한 이유는 문화적인 굴레를 벗어나고 규정화된 코드를 버린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추상화의 본질 때문이다.
나의 추상 작업은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다. 단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그 무언가 존재하는 것을 표면으로 드러나도록 행위하는 과정이다.작품에서 보이는 색과 형태들의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은 수많은 붓질과 색의 뒤바뀜 등의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치며 그것이 요구하는 것만큼의 시간성을 가지고 서서히 드러난다.
한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늘 그전과는 다르게 새로움을 지향하면서도, 그전의 익숙한 지표점을 찾아가려는 대조적인 갈등을 느끼며, 조화롭게 혹은 낯선 구조, 율동적이기도 부동적이기도 한 형태, 부드럽기도 딱딱하기도 한 선들 이런 파라독스한 양면성들은 내 작품에 긴장감을 주며, 실제로 다이나믹한 조형성을 만들어낸다.이렇게 나의 작품은 어떤 개념이나 미리 선험적으로 계획한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충분한 이해를 통해 천천히 화폭에 행위들이 쌓여지고 지워지고 반복되면서 하나하나의 형태들의 드러남에 있다.
이런 행위들은 아주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통해 서서히 나오며, 익숙한 제스처의 반복이 아니라 한 순간순간의 직감으로 나오는 흔적들이다. 또한, 끊임없이 관찰하며 변형시키고 행위에 행위들이 겹쳐지면서 예상치 않은 형태들이 생성되며 여러 단계를 거쳐서 천천히 새로운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또한 캔버스의 평면이 주는 범위에 대한 인식, 그 구조, 비율 등의 인식을 통해서 함께 조형화되어간다.2023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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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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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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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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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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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